펜은 심장의 지진계,김승일
L I K E/문 학 l



문학을 알아! 나는 문학을 포기했는데. 너랑 친해질 만큼은 문학을 알고. 버스 정류장까지 뛰어서 갔다. 문학을 알아! 담배를 빨다가 기침을 했다. 나는 문학을 알아! 


온도계를 좋아해서 물을 끓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물을 끓였다. 눈금이 새겨진 막대 속에 수은주는 부드럽게 솟아오르지. 맨 위에 쓰여 있는 눈금을 향해. 

수은주는 아름답다. 지루하지만. 불을 껐다. 온도계가 터지지 않게. 나는 온도계를 좋아하니까. 


연락이 끊어졌어. 내가 끊었나? 나는 네가 무척 안쓰러웠지. 너한테는 이별이 처음이라고. 그렇게 판단했어. 담배 피웠어. 슬펐니? 우리들의 마지막 수업. 


축하해, 너 시인 됐더라? 읽었어, 너다운 시를 쓰더라? 그리고 너는 이제 끄덕이겠지. 문학을 포기한 사람들에게. 이해해요, 충분히 그럴 수 있죠. 아량을 베풀겠지 이해하니까. 

있잖아, 근데 너 까먹었잖아? 네가 나랑 어떻게 헤어졌는지. 모르잖아. 모르면서 시 쓰는 거니? 


문학을 포기한 사람의 시점을 통해. 뭘 말하고 싶은 거니? 용서받을래? 도대체 뭘 용서 받고 싶다는 거야. 

위로하고 싶은거니? 네 선생님을? 재밌어? 재밌으면 지어내도 돼? 선생님, 더는 못 쓰겠어요. 더는 못하겠어요. 선생님인 척. 


뭘 뜻할 수 있는 거죠? 우리의 이별. 선생님이 아직도 과외 한다고. 누가 말해줬어요. 유명하다고. 

왜 계속 하는 거죠. 수학 과외를! 선생님 시를 쓰세요! 시를 쓰세요! 남들 시를 보는 걸로 만족한다고, 만족하신다고 그러셨지만. 믿을 수가 없었어요. 못 믿었어요. 


지진계를 좋아해서 펜을 잡았다. 펜은 지진계의 바늘이니까. 펜은 자꾸 떨고 있다. 심장을 통해. 지진계는 여진도 적어두니까. 심장아, 이제 무엇을 쓸까. 


학생의 시점으로 마무리할까? 선생의 시점으로 마무리할까? 심장아, 심장아, 너는 모르지. 네가 다음 순간에 어떻게 뛸지. 


학생은 언제까지 시인노릇을. 선생은 언제까지 수학 과외를. 지속하는가? 무너진 가슴에다 손을 얹고서. 

그러고서 당신은 비로소 쓴다. 어? 내 가슴이 무너졌구나. 


내 가슴이 무너진 거. 

너 알았냐고. 


알면서 고개만 끄덕였냐고. 






김승일 <펜은 심장의 지진계>